김규항의 블로그를 보던 중, 자신의 문체에 대한 비평을 언급한 글 (김규항, GYUHANG.NET)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껴 거슬러올라가 찾은 발원지(?)이다.

 로쟈, 문체, 혹은 양파에 대한 생각

  김훈에 대한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다음 부분은 특히 사람들이 김규항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들 느끼는, 어떤 거부감의 근원에 대해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듯하여 시사적이다.

  ‘자객식’으로 말하자면, 사실 “살겠다고 버둥거리는 놈들”은 전부 보수주의자이고, “죽지 못해 안달인 놈들”이 진보주의자이다. 유기체의 생존은 ‘항상성(호메오스타시스)’이라는 걸 조건으로 한다. 항상성이란 건 ‘기브 앤 테이크’, 즉 주고받는 타협을 통해서 유지된다. 단칼에 자결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일은 언제나 그러한 ‘타협’을 전제로 한다. 그것이 인간조건이다. 그럴 경우, 급진적인 진보주의 혹은 절대적 진보주의(‘숭고한 A급 좌파’란 게 있다면)란 그러한 타협과 인간조건으로부터의 ‘단절’을 뜻한다. 즉, 결코 타협하지 않으며, 죽음을 무릅쓸지언정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것(지젝 같은 좌파가 ‘죽음충동’에 그토록 매혹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그에게 유일한 ‘행위(act)’는 상징적 ‘자살’이다). 지젝과 네그리 같은 좌파들은 모두 기계-인간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바, 그것은 현재의 인간조건이 극복되어야지만 진정한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김규항도 그러한지?)

  이런 주제에 대하여 흥미를 갖고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Posted by 조반유리(造反有理)